부산에서의 세번째 하루. 오늘은 서울로 올라가야 하기 때문에 체크아웃 후 호텔에 짐을 맡기고 해운대 근처를 돌아다니기로 했다. 우선 아침 겸 점심을 먹기 위해 해운대 역 북쪽으로 형성되어 있는 해리단 길을 가봤다. 'O리단길'이라고 불리는 곳들에 대해 별 기대감은 없어서 그냥 저냥 골목들 구경하며 가려고 했던 맛집 오픈을 기다렸다. 전날 자기 전에 카카오 맵과 구글 맵 열어놓고 주변 식당들 별점을 검색했다. 아주 진지한 시간이었다.
해리단길이라고 특별한 건 없는 흔한 동네였는데 이렇게 포인트가 될만한 곳 몇군데랑 여러 종류의 음식점들이 있었다. 그리고 나처럼 먹을 곳을 찾아 헤매는 관광객들.
"나가하마 만게츠" 원래 가려던 식당 오픈이 지연되어 근처에 또 가볼만한 곳이 있나 탐색하다가 우연히 들르게 된 곳. 일단 사람들이 줄 서 있길래 덩달아 서 있다가 먹게 되었다. 줄이 긴 편이었지만 회전률이 좋고 직원들이 이런 상황에 익숙한지 아주 노련하게 손님들을 안내하고 있어 오래 기다리진 않았다. 라멘과 교자 양이 많았지만 너무 맛있어서 열심히 먹었다. 서울이었으면 절대 줄 서서 먹진 않았을 텐데 여행을 왔으니 안하던 짓-줄을 서봤고 그럴만한 가치가 있구나 싶었다.
배를 두둑히 채우고 걸어서 해운대를 지나 미포항 쪽으로 향했다. 이곳에서 블루라인파크 열차를 타고 송정까지 다녀올 예정. 이 날은 첫째, 둘째 날과 다르게 흐린 날이어서 바다의 분위기도 달랐다. 해가 쨍쨍했으면 쨍한 여름 느낌의 바다였을 텐데 해가 나지 않으니 쓸쓸한 가을 바다 느낌이다.
열차는 바다를 향한 쪽으로 좌석이 두 줄 있어서 멍때리고 앉아 바다를 바라보며 가면 된다. 열차선 바로 옆에 사람이 걸어갈수 있는 산책길도 잘 되어 있어 실제로 미포-송정 구간을 걸어가는 사람들도 꽤 있었다. 열차 속도도 빠르지 않아 바깥 풍경 음미하며 가기 좋다. 운행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그런지 열차는 겉도 속도 깨끗하다. 열차 외에도 스카이캡슐이라는 것을 탈 수 있는데 가격은 더 비쌌다. 평일 오전 특수로 역시 사람이 많지 않아 원하는 자리에 앉아 조용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리고 송정항에 내려 천천히 해변 구경을 하다가 첫째 날에 가보지 못한 용궁사 주변의 카페가 생각이 나서 그 쪽 방향으로 가보기로 했다. 걸어가기엔 좀 거리가 있지 않나 싶었는데 길은 잘 되어 있으니 천천히 다녀올 수 있겠다 싶어서 차길을 따라 이동. 여전히 하늘은 흐리다.
"제이엠 로스터스 카페" 바다를 바라보는 카페이다. 매우 크고 손님도 많은 편. 베이커리와 커피를 같이 하고 있다. 흐린 하늘에 바람도 강한 편이었지만 이곳까지 왔는데 안쪽에서 커피를 마시는 것보다는 테라스에서 마시는 것이 더 좋겠다 싶어서 테라스에 자리를 잡았다. 분명 바다이긴 한데 물냄새가 강하고 모래 사장이 아니어서 그런가 큰 바다라는 느낌은 그닥 들지 않는다. 햇빛이 좋았으면 좀 더 좋은 느낌이었으려나.
내가 원하는 바다 뷰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너른 수평선과 시원한 바닷 바람 쐬면서 그 동안 여정을 정리해보기도 하고 앞으로의 일정을 생각해보기도 하면서 커피를 마셨다. 시원하다 못해 약간 쌀쌀한 정도여서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그리고 맛있어 보이는 빵을 하나 사고 카페를 떠 났다. (빵은 서울에 돌아와서 먹어봤는데 극찬할 정도는 아니고 그럭저럭 맛)
송정 해변은 해운대와 다르게 날이 흐렸음에도 서핑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신기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원래 서핑으로 유명한 해수욕장이라고 한다. 해운대 못지 않게 매우 크고 긴 해변이었다. 이 바다를 보면서 역시 바다는 해가 중요하구나 또 느꼈다. 맑고 푸른 하늘이었으면 덥기야 하겠지만 분위기는 훨씬 더 좋았을텐데.
이렇게 송정 해수욕장 구경도 하고 다시 해운대로 복귀하였다. 돌아오는 길에 찍은 블루라인파크 송정정거장. 옛날 시골기차역 느낌이면서도 산뜻하다.
해운대에 돌아와서 보니 미포정거장 입구가 아주 크게 잘 만들어져있었다. 출발할 때 횟집들 즐비한 거리를 헤매다 겨우 정거장을 찾아 들어가면서 왜 이렇게 눈에 안 띄게 만들어놨나 불평했었는데, 그냥 내가 길을 잘못 찾은 거였다...^^; 아주 이번 여행으로 지도 앱을 켜 놓고 다녀도 눈썰미나 길찾기 센스가 없으면 헤매는 건 똑같구나 싶은 경험을 몇 번은 했다.
그리고 호텔로 돌아오는 길은 해수욕장 모래사장을 걸어왔는데, 전날엔 발견하지 못했던 설치물(?)들이 있었다. 해운대 해변의 모래로 만든 공룡 조각들. 작업이 다 끝난 것과 아직 작업중인 아이들이 같이 있었다. 어린 아이 마냥 신기해 하며 구경했다.
마지막 날이 흐려서 아쉽지만 그래도 좋다. 이번 여행으로 더 부산이 좋아졌다. 서울과는 너무 다른 매력의 도시. 도시 안에 산도 있고 바다도 있고 화려한 도심도 있고 이국적인 관광지도 있고... 여러 가지 색깔이 공존하는 도시, 제대로 부산 뽕에 빠져버렸다. 관광객들이 많고 날씨도 따뜻하니 왠지 사람들도 더 여유로운 거 같고.
큰 도시라 아직도 못 가본 곳이 많고 제대로 보려면 2박3일은 택도 없이 모자란 느낌이다. 다음 부산 여행에서 또 새로운 곳을 가보리라 다짐하며 부산과 안녕. 부산역 빵집에서 빵을 사들고 수서행 SRT에 올라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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