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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필립 K.딕 걸작선] 11. 유빅

by planeswalker 2026. 6.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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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bik

드디어 마지막 권. 전설의 유빅. 

초반부터 설정 과다에 빠른 사건 전개로 정신이 없다. 독자에게 친절하게 설명해주지 않는 딕의 소설 특징 탓에 많은 부분을 가정하고 추측하며 읽어나가야 한다. 한마디로 '이게 뭔 소리야?' 싶은 이야기. 

그런데 흡입력이 어마어마하다. 앞부분 4장 정도까지 읽은 후 그다음 날 바로 나머지 부분을 모두 읽어 내려갔다. 솔직히 읽으면서도 '지금 내가 뭘 읽고 있는 거지?'라는 생각이 상당히 많이 들었으나 재미있다. 도저히 예측이 안 되는 전개 덕분에 뒤가 궁금해서 읽기를 멈출 수 없었다. 악마 같은 작가의 재능이다.

얼핏 보면 라이벌 초능력자 집단 간의 대립과 사투, 쯤으로 요약될 수 있겠으나 그것보단 훨씬 깊고 풍부한 세계가 담겨있다. 

이미 죽은 사람을 불러내서 질문을 한다니, 이거 죽은자와 대화 스킬이잖아요...... 여기서 1차 당황
세계가 붕괴한다니, 그것도 문자 그대로의 파괴가 아니라 시간 역행에 따른 퇴보라니 SF의 물리적 고증 따윈 없는 것입니까...... 여기서 2차 당황
죽은 줄 알았던 이가 살아있고 실제로 죽은 것은 '나'라니 이건 공포 영화의 클리셰 같은 반전인데...... 여기서 3차 당황
흐음, 반전관 세계관이군, 하고 논리적으로 납득이 되려는 순간 나타나는 모순적인 증거...... 여기서 4차 당황

그리고 이 책의 제목이자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유빅. 유비쿼터스라는 단어는 회사 다닐 때 하도 많이 들어서 익숙한데, 그 유빅인 줄은 책을 읽으며 알았다. 돌팔이 약장수가 팔고 다닐 것 같은 엉터리약부터 엔트로피를 감소시켜 상태를 복원하고 세계를 유지하게 만드는 기적의 물질까지. 유빅은 그야말로 어디에나 존재하며 모든 이미지를 갖고 있다. 그런데 일단 극 중에서 나온 유빅 스프레이가 인상에 크게 박혔다. 정말 하나 구해서 뿌려보고 싶을 정도. 

그 외에도 당황할 거리는 차고 넘쳤다. 이런 것들을 모두 견디고 책의 마지막 장까지 읽고 나면, 머릿속으로 이야기는 정리된다. 그러나 수많은 생각할 거리들이 남는다. 그리고 그 무겁고도 깊은 사유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며 작가 욕(positive)을 하게 된다. 확실히 나는 발리스 연작보다는 유빅 같은 작품이 훨씬 취향이다. 대중소설의 묘미를 100% 즐길 수 있는 멋진 작품이었다. 

 

프리코그는 다양한 미래를 보는데, 그것들은 벌집구멍처럼 나란히 늘어서 있어. 프리코그는 그중에서 가장 밝고 뚜렷하게 보이는 미래를 골라내지. 프리코그가 일단 그런 선택을 하면 반 프리코그는 아무 일도 할 수 없어. 반 프리코그가 능력을 발휘하려면 프리코그가 선택을 한 뒤가 아니라 선택을 하는 현장에 있어야 해. 프리코그의 눈에 모든 미래가 똑같이 진짜처럼 보이도록 해서, 미래를 선택하는 능력 자체를 무효화하는 것이 반 프리코그의 능력이거든.

능력자와 반 능력자의 설정 또한 흥미로운데, 이것들을 구체화 시켜서 전대물 같이 만들었어도 너무 재미있을 것 같다. 만약 현대에 영상화가 된다면 더더욱. 

"테일러 선생은 내 마음의 산물이야." 죠리가 말했다. "이 의사(疑似) 세계에 있는 그 밖의 모든 물건들처럼."
"못 믿겠어." 조는 이렇게 말하고 의사를 향해 말했다."저 녀석이 하는 얘기를 들으셨죠. 안 그렇습니까?"
조그맣게 펑 하는 공허한 소리와 함께 의사는 사라졌다.
"봤지?" 죠리는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말했다.
"나까지 죽으면 이 세계는 어떻게 할 건데?" 조는 소년에게 물었다. "이 1939년의 세계를, 네가 의사 세계라고 부르는 곳을 계속 유지할 거야?"
"설마 그럴 리가. 그럴 필요가 없잖아."
"그럼 이건 모두 나를 위한 거로군. 오직 나 혼자만을 위해 세계 하나를 통째로 만든 건가."
죠리는 말했다. "이건 그리 크지 않아. 디모인에 있는 호텔 한 채에, 창밖으로 보이는 몇몇 사람들하고 차들 정도야. 거기에 덤으로 건물 두어 채를 덧붙였고, 당신이 혹시 밖을 내다볼 경우에 대비해서 도로 건너편에는 가게들을 배치했어."
"그럼 뉴욕이나 취리히, 그런 것들은 아예 있지도 않다는---"
"왜 그래야 하는 건데? 거긴 아무도 안 사는데. 당신이나 당신 동료들이 어딘가로 가면, 나는 당신들이 기대하는 최저한의 구체적인 현실을 만들어냈어. 당신이 뉴욕에서 여기로 날아왔을 때는 몇 백 킬로미터나 되는 시골 풍경을 만들어야 했어. 도시들까지 일일이 만들었는데--- 녹초가 될 정도로 힘들었지. (후략)"

반생명 세계를 구성하는 방법은 마치 오픈 월드 게임의 로딩 시스템과도 같다. 아직 비디오 게임 개발이 활발해지기도 전에 딕은 렌더링에 대한 아이디어를 제공한 셈이다. 지각되지 않는 사물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이 시스템을 뚫고 맵의 경계까지 다가간 사람들이 발견하게 되는 것은 세계의 균열이다. 몹시 재미있고 흥미로운 설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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