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메기 문화관에서 내려와 이번엔 구룡포 근대 역사관을 방문했다.
일본식 저택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었다. 저택뿐 아니라 정원도 일본식으로 꾸며져 있었다.
실제 가옥 구조를 그대로 활용하다보니 동시 방문객 수 제한도 있었는데 이날은 워낙 관광객이 적으니 바로 들어갈 수 있었다. 일본 애니메이션에서만 보던 그 구조를 실제로 보니 신기하기도 했다. 집을 가로지르는 마룻바닥의 기다란 복도가 있고 복도에서 들어갈 수 있는 방이 나란히 늘어서 있다.
집 밖과 복도, 복도와 방, 방과 방 사이가 시원하게 뚫려 있다.
좁고 높은 계단을 올라가면 2층도 비슷한 구조로 실제 거주했던 가족들의 방이 있다.
이렇게 일본인 가옥거리를 둘러보고 점심을 먹기 위해 구룡포 식당 쪽으로 이동했다. 일본인 가옥거리로부터 이어진 길을 따라 남쪽으로 쭉 내려가면 된다.
시장 근처의 중국집 일억반점에 들렀는데 이는 '바닷가에 오면 짬뽕을 먹어야 한다'는 김영하 작가의 말을 빌려 친구가 짬뽕을 먹고 싶어 했기 때문. 사진으로는 잘 티가 안 나지만 커다란 그릇에 해산물이 푸짐하게 가득 담겨 있는 짬뽕이었다. 라면 스프맛 국물이 아닌 얼큰한 국물이 좋았다.
나는 게살볶음밥을 시켰다. 이전의 포스팅에도 썼듯이 나는 미각이 그리 예민하지 않다. 대게나 오양맛살이나 그게 그맛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이 볶음밥은 게살이 맛있었다. 가늘게 찢어진 게살이 덩어리 째 밥 속에 들어있었다.
배를 채우고 구룡포 항의 배들을 구경하면서 바닷가 길을 따라 올라왔다. 어선도 많고 뭔가 인간의 생활 반경 안에 포함된 바다라 그런지 항구의 물은 그닥 깨끗해 보이진 않았다. 그래도 다양한 고기잡이 배들이 쭉 늘어선 것을 보면 전투에 나가기 직전인 전투마를 보는 것 같아 멋있다.
구룡포 구경을 마치고 이제 마지막 행선지인 호미곶으로 향할 때이다.
9000번 버스가 운행중이긴 하나 간발의 차로 놓쳤는지 다음 버스까지의 대기 시간이 꽤 되었다. 그래서 카카오 택시를 이용. 택시는 금방 잡혔고 바닷가 길을 따라 달려 금방 호미곶에 도착했다. 추가요금이 붙어 1.6만 원 정도 나왔다.
호미곶 해맞이 광장에 내리자마자 우리를 맞이해준 것은 사진으로만 보던 그 손. 관광지의 이상한 조형물들 극혐하는 편인데 이 상생의 손은 그런 느낌이 없이 그냥 멋있었다. 계속 바라보게 된다.
우선은 여기서도 여행자센터에 먼저 들렀다. 짐을 보관하러 왔다고 하자 데스크의 안내 분이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셨다. 짐 보관을 위해 연락처를 기록하려고 보니 우리 이전에 왔던 관광객이 이미 며칠 전의 사람이다. 오래간만에 찾아온 사람이 반가우셨던 걸까, 멀리서 왔는데 제대로 구경도 못하고 어리바리하다 돌아갈까 봐 안타까우셨던 걸까. 먼저 물어보지 않았는데도 호미곶에서 꼭 가봐야 할 곳들 다 일러주시고 어느 어느 루트로 보면 된다고 아주 친절하게 알려주셔서 감동했다.
바다에 있는 손과 짝을 이루는 손이 광장에도 있다.
상생의 손 옆으로 바다 위로 걸어나갈 수 있는 길이 있는데 이곳이 진짜 파도 맛집이다. 바다 바람을 그대로 맞을 수 있어 모자나 짐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거센 바람 속에서 3단 파도를 구경하고 있노라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에메랄드 및 물결과 귀를 때리는 파도소리 안에 있으면 이곳이 진짜 바다 200%라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안내분이 알려주신대로 국립등대박물관을 방문했다. 전시관에는 세계 등대의 역사 및 여러 가지 실물 등대 장비 등을 구경할 수 있다. 별 기대 없었는데 이 전시가 꽤 좋았다. 그동안 전혀 몰랐던 것들이라 흥미진진하게 전시 내용을 살펴볼 수 있었다. 전시관 2층이나 체험관은 아이들을 위한 곳이었다. 구경 중인 아이들이 없어서 나도 그냥 들어가서 둘러보았는데 내가 봐도 재미있는 것들이 많았다.
그리고 이 등대박물관의 묘미라면 역시 테라스 전망대. 바다를 향한 벤치에 앉아 나를 향해 달려오는 파도를 보며 멍 때리기가 가능하다. 테라스 안쪽에는 카페테리아가 있어 관람객들이 쉬어갈 수 있는 커다란 공간도 있다. 하지만 안쪽보다는 역시 바깥쪽, 바다냄새 물씬 나는 곳이 바다를 보기엔 훨씬 좋다.
저 멀리 호미곶 등대가 보인다.
푸르스름한 바다색이 정말 '동해'라는 느낌이다. 멀리서 보면 천천히 부드럽게 다가오는 파도도 직접 들어가 보면 그 위력이 장난 아니겠지 싶다.
아쉽게도 호미곶의 유채꽃밭은 거의 끝나갈 무렵이었다. 이 사진은 커다란 유채꽃밭은 아니고 반대쪽의 조그만 정원 쪽이다. 커다란 유채꽃밭은 버스를 타고 공항으로 이동하면서 볼 수 있었다.
그냥 가기 아쉬워서 기념품 샵에 들러 냉장고 자석을 하나 샀다. 영어로 쓰인 HOMIGOT이 멋있다.
안내원분이 알려주신 대로 정해진 시각에 맞춰 9000번 버스를 탔다. 그리고 이번에 또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되는데 구룡포에서 택시를 타고 올라왔던 길과는 다른 길로 실제 주민들이 사는 마을을 지나가는 코스인 것 같았다. 계속 이어지는 내리막길인데도 어찌나 커브가 많은지. 1차선 도로의 그 좁은 길을 버스가 질주하는데 진짜 롤러코스터 탄 거 같았다. 운전 조금만 삐끗해도 언덕 아래로 꼬라박을 만한 곳도 있어 살짝 무서웠을 정도. 그래도 동네 구경, 꽃구경, 바다 구경하기엔 좋은 길이었다. 적당한 긴장감과 함께 😅
이 버스도 달리고 달려 공항까지 30분만에 도착했다. 너무 일찍 도착한 탓인지 공항에 아무도 없다... 진짜 아무도 없었다. 비행기 시각이 오전 오후 딱 정해져 있어 그 이외 시간에는 아예 장사를 접는 것 같았다. 지나가던 분 물어보니 쇼핑센터 앞에서 전화하면 직원분이 달려오신다고 ㅋㅋ
이번에도 역시 공항 전세낸 (이라기 보단 공항에서 노숙하는) 기분으로 쉬었다. 이륙시간 2시간 전쯤 되니 그제야 1층 카페베네도 영업을 시작하였다. 카페에서 샌드위치와 음료수로 간단하게 배를 채웠다. 이번 여행에서 마지막 식사가 부실해서 아쉬웠지만 이런 게 여행의 묘미지 싶다.
이렇게 비행기 타고 김포 공항으로 잘 왔고 무사히 집으로 귀환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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